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2-12-01 15:42

  • 오피니언 > 칼럼&사설

[보통글밥]늙음을 배울 까닭(어머니께)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 스토리텔링 작가, 시인 - 신협중앙회 원고 자문위원 -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석사)

기사입력 2022-09-30 11:07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 나는 하루에 꼭 한 번 이상 은 어머니와 통화한다. 아버지 가 살아계실 때도 마찬가지였 다.

왜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 는 없다. 그냥 내 어머니니까 통 화하는 것이다. 어제는 어머니 가 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빨 리 늙어가지 말라”고 당부하셨 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먼저 간 아버지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쩜 저래 저 아빠를 꼭 빼닮았을까”를 수시 로 되뇌시는 분이다. 몇 해 전 추석 때 아버지 성묘 가는 길에 형님도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네가 아버지처럼 너무 빨리 늙어가는 것 같 아서 걱정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삶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됐다. 이해의 원천은 아버지의 자식이기 전에 기자로 생활한 5년 2개월 삶에 있다. 이 시간이 세상을 보는 안 목을 길러주었다. 그다음 신문사 사표를 던 지고 나와 앓은 10개월 우울증이 또 한 번 내 안목을 틔워 줬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 삶 의 지표와 이정표를 새로 세웠다. 그 곁에 아 버지가 ‘인생 코치’로 있었다. 사실 아버지는 생전에 (형에 비해) 당신 얘 기를 잘 안 듣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시곤 했 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있는 시간 이 많았고, 형은 상대적으로 아버지와 함께하 는 시간이 적었다. 형은 대학 들어가면서 집 을 떠나 군대 전역 후 외무고시에 돌입했기 로 근 15년간 집에 오는 일이 1년에 일주일 도 안 됐다.

나는 평소 아버지 생각을 충분히 잘 들었 다. 형이 내려와 3부자가 앉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날이면 아버지와 장남은 죽이 잘 맞 았다. 나는 좀 피곤했다. 술 실력이라면 아버 지와 형은 막상막하였고, 나는 두 분에 비하 면 ‘얼라’ 수준이었다.

나는 이미 아버지 말씀 을 갖고 복습을 몇 번씩 한 뒤였고, 형은 새로 듣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미 기자 옷 을 벗고 작가의 길로 접어든지 3년째였다. 아 버지가 전업작가셨기에 작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시 대가 바뀐만큼 아버지와는 다른 색깔의 작가 를 꿈꿨다. 우선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 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면 소설가는 훗날 돼도 좋은 것이 니까. 신문사 마지막 이력을 살려 남들 안하 는 스토리텔링을 개척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 했다. 스토리텔링은 그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 야기 이상의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더 늙어 기 력에 부치면 하지 못할 일들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가졌었 다. 그러니까 그저 이야기 대신 이야기 이상 의 일에 매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일들을 하 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낡은 것, 늙은 것, 오 래된 것에 대한 드넓은 이해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삶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삶 그리고 나아가 선조들의 삶 을 두루 이해하는 게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내 먹고사는 일과 관련 해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담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라도 나 는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볼 필 요가 있었던 것이다.

들여다보 면 나쁜 것도 보였지만 그보다 는 배울 것이 더 많았다. 나는 동시에 많은 동시대 젊은이들 이 우리 선배들이 걸어온 삶을 되짚어보는 공부를 하면 참 좋 겠다고 생각했다. 배움의 본질은 젊음에 있지 늙음에 있지 않 다.

대체로 나이 40대 후반부터 겪는 노안, 갱 년기는 더 배우지 말라는 몸의 신호탄이다. 우리는 100세 시대 운운하지만 한 세대를 30 년으로 기준한 선배들의 경험칙을 온전히 뛰 어넘을 수는 없다.

우리 인간 신체라는 것은 30세 이후부터 늙어간다. 남녀 공히 노안이란 것과 여성이 겪는 갱년기라는 것은 더 배울 생각 말고 이제 마무리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그렇다고 영 책을 놓고, 평생학습을 그만 두라는 뜻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 큰일을 하 기에는 늦었다는 신호라는 말이다.

청년들은, 젊은이들은 대체로 이 신호가 자기 기분으로 만 살아 죽을 때나 돼서 올 것이라 착각한다. 아니다. 대학 졸업해 결혼하고 아이 둘만 낳 고 보면 체력이 전과 다르다고 느낀다.

그땐 이미 새 배움이 늦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네 삶이란 20~30대 배움을 유지 하다가 정리하는 것이겠다. 인간은 태어날 때 ‘진 덩어리’로 나온다. 갓 난아이들의 눈곱은 어지간해선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 고유의 진 덩어리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굳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30세 이 후 인간은 진이 빠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이 빠지고 빠지면 인이 박히는 시절이 온 다. 그게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책임감을 가 지고 죽을힘을 다해 살아갈 때다. 젊은이가 노년의 삶을 추적해 보는 것은 참 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들이 먼저 간 길을 들여다봄으로써 대비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의 전선 에서 고투를 벌이고 있는 생활인일수록 노년 을 공부하는 게 좋다. 내가 노년을 공부하는 까닭은 1차적으로는 내 생계수단을 위해서지 만,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아름다운 노년의 길 을 걷고자 함이다.

우리 사회는 노인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다. 노인의 나쁜 습은 반면교사하면 될 일이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노인의 말이라도 체험을 통한 말이라면 능히 감동을 준비해 도 좋을 것이다. 젊은 우리가 노인을 야멸차 게 대하고도 노인이 되어서 ‘요즘것들’을 욕 할 수야 있겠는가.

늙음을 배워야 비로소 철 이 들고, 인향을 내뿜을 수 있다는 게 아버지 자식된 내 입장이다. 어머니와 형님의 “너무 일찍 늙어간다”는 것은 “너무 잘 살아간다”는 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심보통 2020.1.26. 대구 가는 길 기차 안에서

ycinews (ycinews@nate.com)

  • 등록된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댓글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