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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오후 1:53:53 입력 뉴스 > 독자기고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208)
한관식 작가



촘촘한 별이 온통 하늘을 덮고 있었다. 바다는 보채듯 플랑크톤이 야광체를 뿜어내며 구왕구왕 짖었다. 탄성이 절로 날, 눈이 부시게 미치고 싶은 풍경을 외면한 한 걸음 한 걸음은 곧 죽음을 내건 피의 살육이 예견되어 있었다.

 

뒤를 따르는 은영의 발자국소리를 채집했다. 그나마 전진하는 내 육신에 힘을 실어주는, 비빌 언덕 같은 은영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있다는 것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푸른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온 손아귀로 불끈 쥔 곡괭이는 든든한 생명줄이었다. 이만큼 왔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이 ‘못 먹어도 고’라는 사실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도사견들의 잠든 숨결이 확대되어 들려왔다. 순간 최종적인 돌격신호를 받고 싶은 심정으로 은영을 돌아봤다. 망치를 높이 올려 춤을 추듯 출발을 부추겼다.

 

죽 아니면 밥이고, 도 아니면 모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지로 내 몸을 던졌다. 선제공격을 해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도사견들의 방심에 심한 타격을 입힌 셈이다. 검정도사견의 옆구리를 곡괭이로 찍었다. 찰흙에 곡괭이질을 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그만큼 물렁한 살 속을 파고든 명중률에 한껏 살기가 수위를 넘고 있었다.

 

피가 튀었고 찢어지는 외마디 비명이 온 섬에 메아리쳤다. 얼떨결에 잠에서 깨어난 노랑 도사견은 공격태세를 갖추어 가장 극렬하게 덤벼들었다. 푸른 광채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은 그렇다 치고 이빨과 발톱에서도 광기가 흥건했다.

 

치명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꼬리를 감추고 삼십육계를 택할 줄 알았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는 반격은 내 중심을 무너뜨렸다. 나는 곡괭이를 놓치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노랑 도사견이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비린내 풍기는 침이 내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최대한 뻗어 목덜미를 움켜잡고 간신히 버텼다. 날선 발톱이 마구잡이로 옷을 헤집고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깊이, 치명적으로 살이 뜯겨나가는지 알 수 없지만 저 주둥이만큼은 멀리하고 싶었다.

 

짐승의 이빨이 강철로 만든 발목 덫처럼 시시각각으로 죄여온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잡고 있는 도사견의 목덜미를 놓치는 순간 내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뜯겨나갈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때였다. 잊고 있던 은영의 존재가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처님, 하나님, 단군님, 산신령님 등등을 버무려 하나의 유일신처럼 등장한 은영의 망치가 노랑 도사견의 어깻죽지를 내리쳤다. 밑에 깔려있는 내게도 충격이 전달될 정도의 강도 있는 타격이었다.

 

도사견은 고개를 빳빳하게 하고 늑대처럼 신음을 토해내었다. 그 틈을 노려 와락 밀쳐내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격투기선수가 된 자세로 방어형태를 갖추었다. 어제 곡괭이에 찍힌 발등에 난 상처 때문인지 어깨 통증 때문인지 천천히 물러서고 있었다.

 

헤드랜턴에 비춰지고 있는 풀 더미 곁에는 흰자위를 드러낸 검정 도사견이 흘러내리는 내장과 함께 뻗어있었다.

 

은영은, 이미 천 조각이 돼버린 너덜해진 옷 사이로 송골송골 맺히는 피를 보며 내 어깨를 부축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힘이 퐁퐁 솟아나는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울 선생님, 저 솔직히 반했어요. 소독하러 가요. 상처가 덧나기 전에”

 

“놓친 노랑이는 괜찮을까요?”

 

“터미네이터에 글래디에이터가 이렇게 버젓하게 버티고 있는데 무슨 걱정? 이제야 온전히 탐나국(國)의 위신이 서는 것 같아서 룰루랄라인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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