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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오후 2:07:02 입력 뉴스 > 독자기고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204)
한관식 작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하룻강아지에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자신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졌다. 창고 문을 열지 못하게 받쳐놓은 곡괭이와 손에 쥔 야구 방망이까지 여차하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를 그제야 인식했다.

 

이 어이없는 대치에서 폼나게 벗어나고 싶었다. 적어도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굶주린 똥개에 불과하지 않는가.

 

하긴 약간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똥개보다 확실히 큰 도사견이라는 사실을 훅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고 그들은 무식하게 덤벼드는 짐승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안점을 두었다.

 

갑자기 단호해졌고 비장해졌다. 기지국이 멀어서인지 섬 전체는 이미 통신수단이 차단되어 있었다. 오십 미터 떨어진 은영에게 신호를 보내어 과감하게 맞설 거라는 남자다움도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다움은 곧 내게 대한 다짐이고, 용기를 얻고 싶은 비루한 심정이라는 사실이 왠지 슬펐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대치상황에 놓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모르스 신호라도 익혀둘걸. 혼자 안다고 될 모르스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일단 배가 고팠고 추웠다.

 

곡괭이 자루와 야구방망이 손잡이를 힘껏 쥐어보았다. 가장 최적화되고 붙임성 있게 어떤 것이 다가오는지 판단해주는 손아귀는 신중했다. 곡괭이를 쥐어들었다. 왠지 그들에게 더 크게 어필 될 수 있다는 소망과 함께 창고 문을 벌컥 열었다.

 

소리를 크게 냄으로서 얻어지는 효과를 한 톨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은근히 은영의 응원도 받고 싶었다. 무거웠지만 곡괭이의 번뜩이는 날이 검투사가 된 듯 우뚝 서게 하였다.

 

밤바다 파도소리가 자욱했다. 몽돌 사이로 밤물결이 사박사박 힘줄 고운 여정으로 흘러 다니는 소리가 정겨웠다. 순간적인 당당함이 노랑 도사견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은영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검정 도사견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최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나는 곡괭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단번에 내리찍어 어디든지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승산이 장담되었다.

 

검정 도사견이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힘을 보태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마리가 뭉치기 전에 노랑 도사견을 향하여 선제공격으로 다가가 곡괭이를 휘둘렀다.

 

창문으로 보고 있던 은영이도 망치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곡괭이의 끝이 노랑 도사견의 발등을 찍었다. 몸을 부풀려 덤벼들 기세를, 발등의 통증과 피범벅으로 일순 가라앉더니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고 낑낑거렸다.

 

한 놈은 해치웠구나.’하는 안도도 잠시, 검정 도사견이 껑충 뛰어오르며 내 몸 위로 덮쳤다. 충격에 의해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앞발로 쓰러진 나를 찍어 누르며 날카로운 송곳니로 찢어발기듯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은영이가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나는 곡괭이 자루를 검정 도사견의 아가리 속으로 집어넣었다.

 

어디에서 그런 기지와 순발력이 딱 떨어지게 발휘되었는지 스스로 대견해 하며 힘껏 자루를 밀어 넣었다. 검정 도사견은 캑캑 거리며 고통으로 풀쩍풀쩍 뛰고 있었다. 달려온 은영이가 눈을 감고 마구 망치를 휘둘렀다.

 

노랑 도사견은 이미 수풀더미에 몸을 숨겼고 의외의 공격에 주눅들은 검정 도사견마저 뒷걸음치기에 바빴다. 우리는 누구와도 맞설 천하무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날 밤은 뜨겁고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동지애로 한 몸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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