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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오후 2:59:13 입력 뉴스 > 칼럼&사설

[데스크칼럼]지랄 총량의 법칙
최병식 편집국장



사전적 의미로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비속어로 '지랄'이라고 한다. 지식인들도 ‘지랄’이라는 단어가 비속어인지라 함부로 활자화 하는데 조심스러워 한다. ‘지랄병’이나 ‘지랄발광’ 등 합성어가 돼도 여전히 품격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쓰려니 꺼림직하다. 경북대 김두식 교수가 그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걸 소개한 적 있다. 다른이 한테서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 때는 책 제목도 생소해 뭔 말인가 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저마다 일생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 이게 이른바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다음을 전제로 한다. 첫째, 인간이라면 태어나 성장하면서 어쨋던 '지랄'을 떤다는 것이다. 즉 자라면서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그렇지 않으면 이 법칙에 따라 어른이 된 뒤에 성장기에 써지 않은 '지랄'을 꼭 다 소비하게 된다는 거다. 어떤 사람은 성장기에 이미 정해진 지랄의 양을 다 써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다 성장하고 나서야 남은 양의 지랄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한사람이 죽기 전에 지랄의 총량은 반드시 다 쓰게 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보기에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으로 지랄을 하더라도 그게 다 그에게 주어진 일정한 양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충고하고 있다.

우리는 어릴 때 지랄을 떨면 ‘개구장이’라 부르고, 젊어서 떠는 지랄은 ‘청춘’이나 ‘낭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장년이 돼서 떠는 지랄에는 그냥 ‘미친*’이라거나 심하면 ‘또라이’라는 소리를 하고, 늙어서 하는 지랄에는 ‘주책’이나 ‘노망’이라고 같다 붙인다. 그러고 보면 일생에서 언젠가는 분출될 지랄이라면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떨어버리는게 듣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내 성장기에는 차마 몰랐던 사실인데 아이 낳아 키우면서 보면 한편으론 속상해 하지만 그런걸 절실히 느낀다. 속으로 ‘야 ~ 이놈아, 너만할 때 평생동안 떨 지랄 다 떨어라’라는 생각하면서.

그런데 우리의 실제 생활은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성장기 때는 '지랄'을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모두가 갖는다.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엉뚱한 행동(지랄)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반항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삐딱한 길로 샐라치면 부모는 어쩔줄 몰라 당황하며 큰일이 생긴 것처럼 더욱 아이를 조지기 시작하고 갈등만 키운다. 그러나 이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미리 알거나 조금의 지혜만 있다면 오늘의 ‘지랄’이 내일의 ‘영광’을 위한 일시적 갈등과 시련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답은 이렇게 의외로 쉬운데 부모나 기성세대는 그 시간을 못 기다려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릴때 지랄하지 않고 이른바 ‘범생’으로 자라 겉으로는 멀쩡하게 '훌륭한 어른'이 된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지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여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면 요즘 다시 네티즌들의 관심에 점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2014년 공연음란죄로 경찰에 체포됐다 5일 뒤에 제주지검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나,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다시 수사를 받아야 하는 전직 법무부 차관같은 사람. 굳이 예를 들자면 우리 주변에도 사실 어릴때 못떤 지랄을 이제야 떠는 애어른이 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딱히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지랄의 총량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분명히 지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 늘 내재되어 있다는 건 틀림없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선생님들 말을 들어보면 이 ‘지랄 총량의 법칙’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지랄을 떨어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지랄이라는 것이 대개 생애주기상 사춘기 때 폭발적으로 발현되는 법이라, 애들이 그때 지랄 좀 떨기로서니 너무 분노하거나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썽을 부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에게 “그만해라” 보다 오히려 “어서 어서 지랄을 떨어라”고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판이다. 반대로 나이들어 지랄이 찾아오면 남에게 창피요, 손가락질 받기 딱이다. 괜히 늘그막에 이 지랄이 발현되면 낭패가 아니겠느냐는 사실에 절대 공감한다. 어릴적 지랄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며, 희망일 테지만, 개인적으로 중년 이후의 지랄은 까딱하면 그간 쌓아온 명예에 먹칠이요, 패가망신의 불씨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랄들이 존재하지만 중년 이후의 것이나 권력을 움켜쥔 지배층의 그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한테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것이라 위험하다.


내게도 아직 부릴 지랄이 더 남아 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아니지, 지랄은 살핀다고 보이는게 아니라 불쑥 튀어나오는게 지랄 아닌가. 이 나이에 지랄이 풍년이면 망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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