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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2 오전 7:25:17 입력 뉴스 > 이규화논설위원

[yci칼럼]이규화 논설위원
감정의 연금술(Alchemy of emotions)



▲ 이규화 논설위원(법학박사).

출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도시의 도로는 마음이 조급해진 차량과 사람들로 인해 매우 분주해진다.

 

차량은 차량들끼리 빵빵거리며 서로 다투기도 하고, 사람은 사람들끼리 서로 빨리 지나가려다 얽히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행자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보행자신호가 켜져 수십 명이 홍해바다를 건너듯이 재빨리 지나가야 하는 횡단보도 한가운데 차량이 떡 버티고 서 있거나, 머리나 꼬리를 쑥 내밀고 멈춰 보행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른바 ‘꼬리물기’를 하다 신호에 걸려 멈춰 선 차량들이다. 오늘 아침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검정색 고급세단이 8차선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 한가운데 멈춰 서 버렸다. 그냥 지나갈 내가 아니다.

 

사실 최근까지도 이런 상황은 언제나 나를 화나게 만들어 운전자에게 노골적으로 이를 표출하기도, 때로는 다투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이런 상황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무턱대고 화를 내기보다는, 바삐 가려다 그만 횡단보도에 갇혀 뭇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운전자에게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은 운전자가 중년여성이었다. 살짝 쳐다보았더니, 미안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나의 마음이 유리창을 통해 전달된 것일까.

 

한 젊은 티베트 스님이 이끄는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한 50대 프랑스여성의 얘기이다. 그녀는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분노와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몇 차례의 명상프로그램을 거치고 난 뒤 그녀는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용서하고 다시 진실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독약이 사랑의 묘약으로 변화한 것이다.

 

한국에서 있었던 다음과 같은 일화는 더 극적이다. 한 신부님이 돌보던 사형수와 그 사형수가 살해한 젊은이(피해자)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어느 날 피해자의 어머니가 신부님을 찾아와서는 사형수와의 면담을 좀 주선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부님이 그 뜻을 사형수에게 전달하였지만 그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아들을 내가 죽였는데 무슨 용기로 그 어머니를 만나겠느냐는 것이었을 것이다. 수차례에 걸쳐 애원하다시피 한 결과 겨우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형수의 마음은 아마 속죄의 심정으로 어머니의 소원이나 풀어 드리자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 신부님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 함께 앉았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어머니가 손을 쭉 뻗어 사형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낮고 조용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니는 이제부터 내 아들이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무기징역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두 母子는 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남쪽마을 어딘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의 연금술을 가장 잘 알고 활용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가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은 바로 이 연금술의 가장 실천적 구호일 것이다.

 

반면에 감정의 무상(無常)함과 연기(緣起)적 속성을 가장 잘 꿰뚫어 보신 분은 붓다이다. 철저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나 할까. 성냄, 기쁨, 슬픔, 두려움, 연민, 사랑, 질투 등 감정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모든 동물 어쩌면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속성일 뿐이다.

 

그 속성을 잘 알아 그 노예가 되지 말고 어떻게 이를 활용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적절한 두려움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지나친 사랑은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것처럼.

 

만약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신부님이 자신의 은촛대를 훔쳐갔다 잡혀온 장발장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장발장은 더욱 더 큰 범죄인의 길로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코제트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것과 같은 사랑을 베풀 기회는 영영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부님이 장발장의 절도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대신에 연민과 사랑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의 연금술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리라.

 

소모적 파괴냐 생명의 도약이냐를 좌우할 이러한 감정의 연금술은 부모와 자식 간, 형제 간, 부부 간, 연인 간, 친구 간, 이웃 간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간이나 지역 간, 국가 간, 심지어는 사람과 동물 혹은 사람과 식물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는 불가사의한 마음작용일 것이다.

 

우리가 다만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거나 지혜가 부족하여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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