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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7 오후 3:33:31 입력 뉴스 > 이규화논설위원

[yci칼럼]이규화 논설위원
분노하지 않는 한국인



▲ 이규화 논설위원(법학박사).
세계 100여 나라에 4백만 부 이상이나 팔리며 전 지구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스테판 에셀(Stéphane Hessel)의 <분노하라>는 그가 만 92세 되던 해인 2009년에 레지스탕스 관련 모임에서 했던 연설의 내용을 한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출판한 것으로, 불과 10여 쪽에 지나지 않은 팸플릿 규모의 작은 책자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레지스탕스 출신의 老작가가 정의롭지 못한 오늘날 사회에 대한 현대인들의 무관심을 질타하면서 사람들의 원초적 정의감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유층과 중산층의 세금부담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사회적 약자나 환경에 대한 배려에서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프랑스사회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하라고 외친 그가 만약 한국사회를 가까이서 보았다면 뭐라고 외쳤을까? 어쩌면 절망해서 아예 말문을 닫아버리지나 않았을까?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돈만 있으면 온갖 핑계로 제도를 악용하여 편안히 지낼 수 있는 나라, 어딜 가나 수도꼭지만 켜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 찬물을 흥청망청 써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물과 전기를 그야말로 ‘물처럼’ 흥청망청 쓰기 위해 오래된 마을을 수장시키고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시키며 댐을 막아도 보상금만 두둑하다면 결국 몇몇 사람의 반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나라, 애들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로 하루에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들락거려도 누구 하나 나서서 나무라는 사람이 없는 나라, 다리가 멀쩡한 젊은 사람들이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으면 크게 손해나 보는 것처럼 혹은 아예 계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나라, 학교교육이 망가지건 말건 오직 점수경쟁을 통해 나만 잘 살면 되는 나라.....

 

이런 한국사회를 보고서도 Hessel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분노하라’고 외칠 수 있었을까?

 

평화로운 밀양의 한 시골마을이 고압선철탑의 설치문제를 두고 쑥대밭이 되었다. 마치 7년 전 산업폐기물소각장 문제로 시끄러웠던 영천처럼. 천 년, 만 년을 살아왔을 고향마을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노인 한 분이 이미 분신자살을 택했고, 남아 있는 주민들도 대부분 연로하신 몸으로 결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의 분노는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조율하여 타협점을 찾지 못한 정부에 대해? 흥청망청 전기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 아마도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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